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최고의 선(善), 에우다이모니아'에 이르는 길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지성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스승인 플라톤이 이데아라는 이상 세계에 주목했던 것과 달리,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 세계에 깊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가 탐구했던 수많은 주제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바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답을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개념에서 찾았습니다. 본문에서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중심으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탐색해 보고자 합니다.
인생의 궁극적 목적,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우리는 왜 돈을 벌고, 명예를 추구하며, 건강을 유지하려 노력할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모든 활동이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위한 수단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행복, 즉 '에우다이모니아'는 단순히 순간적인 즐거움이나 만족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좋은(eu)'과 '영혼(daimon)'의 합성어로, '인간의 고유한 기능이 탁월하게 발휘되는 상태' 또는 '온전한 번영과 번성'으로 번역될 수 있는 훨씬 깊고 객관적인 개념입니다.
에우다이모니아는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한평생에 걸쳐 완성해 나가는 삶의 총체적인 상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고유한 기능이 바로 '이성(logos)'을 사용하는 능력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최고의 행복인 에우다이모니아는 '영혼이 이성에 따라 탁월하게 활동하는 것'이라고 정의됩니다. 즉, 우리의 이성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덕이 있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덕(德)의 핵심, 중용(Mesotes)의 길
그렇다면 어떻게 '덕(virtue)'을 갖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mesotes)'이라는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도덕적 덕은 '지나침(excess)'과 '모자람(deficiency)'이라는 두 가지 악덕 사이의 올바른 중간 상태입니다. 즉, 덕은 감정과 행동에 있어 적절한 중간을 찾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용기'라는 덕은 '무모함'이라는 지나침과 '비겁함'이라는 모자람 사이의 중용입니다. '관대함'은 '낭비'와 '인색함' 사이의 중용이며, '절제'는 '방종'과 '무감각' 사이의 중용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중용이 단순히 산술적인 중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각 개인과 그가 처한 특정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소방관에게 요구되는 용기와 어린아이에게 요구되는 용기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올바른 중용을 찾아내는 이성적 능력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적 지혜(phronesis)'라고 불렀습니다.
덕은 습관을 통해 완성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덕을 갖추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덕은 마치 악기를 배우거나 운동 기술을 익히는 것과 같이, 끊임없는 '실천'과 '습관'을 통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서는 이론 공부만으로는 부족하며, 매일 꾸준히 건반을 두드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용기 있는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절제하는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절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선한 행동의 반복은 우리의 영혼에 일종의 '성품의 상태(hexis)'를 형성합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지만, 이것이 습관이 되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고 즐겁게 덕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희망적인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의 성격과 도덕성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과 실천을 통해 얼마든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삶이란 결국 좋은 습관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행복은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우리에게 행복이 멀리 있는 이상이나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이 아님을 가르쳐 줍니다. 행복, 즉 에우다이모니아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이성을 발휘하여 올바른 중용을 찾고,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여 훌륭한 습관으로 만들어갈 때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완성된 답을 주기보다, 평생에 걸쳐 우리의 성품을 조각해 나갈 수 있는 실천적인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좋은 삶이란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매일의 선택과 행동으로 '만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